10시간 넘게 이어진 증인 신문에서 권은희 과장은 차분한 태도로 답변을 이어갔고, 피고인석에 앉은 김용판 전 청장은 묵묵히 권 과장의 증언을 들었다. ©그림 서혜주

“서울경찰청이 날 죽이려고 하는구나”

김용판씨에 대한 공판에 권은희 수사과장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권 과장은 김용판씨가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고 증언했다.
이광석 서장이 ‘서울청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증언했다.

김은지 기자(smile@sisain.co.kr)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또 다른 주인공, 권은희 수사과장이 증인석에 앉았습니다. 이번 2차 재판에서 권 과장은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외압을 생생하게 증언했습니다. 권 과장은 서울지방경찰청 김병찬 수사2계장이 “증거 분석 내용이 노출되고 국가안보에 위해가 초래된다. 국가안보가 심각한 상황에 놓이고 사회의 혼란이 커진다”라며 증거물을 수사팀에 넘기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청의 수사방해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을 증언한 셈입니다.
8월30일 오전 10시에 시작해 자정 무렵 끝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2차 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이범균 부장판사)에 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재판 중간 휴정 시간, 권 과장을 응원하기 위해 법정까지 나온 시민들은 그에게 다가가 “정의로운 경찰, 힘내세요”라며 꽃을 주기도 했다. 정작 권 과장에게 ‘격려전화’까지 한 적이 있다는 김용판 전 청장은 증인석의 그를 잘 쳐다보지도 않았다. 검찰 특별수사팀(윤석열 팀장)과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유승남 변호사 등) 모두 신청한 증인이었던 권은희 과장은 국정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증언을 했다. 역시 쟁점은 김용판 전 청장의 ‘국정원 사건 수사 축소•은폐 지시’였다.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검찰 신문

검사: 통화 목록을 보면 지난해 12월12일 오후 2시59분경 서울경찰청장 부속실에서 온 게 있다. 이때 피고인(김용판)의 전화를 받았나?

권은희: 수서경찰서 지능팀 사무실에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서울청장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사유는 두 가지였다. 내사 사건이라는 점과 검찰에서 영장을 기각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점이었다. 그때 제 책상에는 민주통합당이 가져온 고발장이 있었다. 압수수색 영장 신청은 결과를 떠나서 수사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두 근거가 다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검사: 서울청장이 직접 전화해서 영장 신청을 막은 경우가 있었나?

권은희: 2005년 경찰에 임용되어 업무를 수행하면서 지방청장에게 압수수색 영장 신청 또는 구체적 사건 관련 지시를 받은 건 처음이다.

검사: 피고인이 직접 전화할 정도로 다급한 분위기였나?

권은희: 상황 자체는 다급했던 거 같다. 수서경찰서의 영장 신청을 못마땅해하는 분위기였다.

검사: 피고인은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에게도 전화해서 영장 신청을 막았죠?

권은희: 피고인과 통화할 때 서장님도 지능팀 사무실로 올라와서 내 앞에 서 있었다. 전화를 끊고 ‘압수수색 영장 신청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서장께서도 (김용판의) 그런 전화를 오전에도 받았고 직전에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오전에는 (김용판을) 설득했더니 ‘그래라, 수사 방침대로 해라’고 했는데 오후에는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설득이 되지 않는다며 (김용판이) 막 화를 낸다고 했다.

검사: 수사팀이 대선 당일에야 분석자료 전부를 받게 된 이유가 뭔가?

권은희: 서울청이 증거물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서울청 김병찬 수사2계장은 ‘증거 분석 내용이 노출되고 국가안보에 위해가 초래된다, 국가안보가 심각한 상황에 놓이고 사회의 혼란이 커진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증거물 분석을 돌려주지 않는 건 형사소송법 위반이라고까지 말했다.

검사: 사회 혼란이 커진다고 했다는데 어떤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나?

권은희: 국가안보 관련 내용이라 사회 혼란이 커진다는 것만 강조했다. 수사팀을 믿지만 검찰에 가면 다 노출될 거라며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왼쪽)이 2013년 10월 15일 서울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선서거부를 하고 자리에 앉아 있고,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선 당일에야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하게 된 권 과장은 당장 국정원의 온라인상 활동을 찾아냈다.

검사: 이날(지난해 12월19일) 새벽에 수사팀이 구글 검색 등을 해서 자료가 나왔고, 수서경찰서장도 서에서 대기하고 있었죠?

권은희: 가지를 못했다. 왜냐면 증거 목록을 받고 우리 수사팀이 갑자기 매우 심각해졌다. (서울청에서) 받아온 증거에 내용이 없다며 담당 직원이 ‘과장님 깡통입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김하영 노트북에서 삭제된 메모장 파일에서 나온 아이디 닉네임 따위를) 구글링 해보니 특정 후보?특정 정책과 관련한 내용이 나왔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했고, 서장·팀장과 직원, 누구 하나 퇴근을 하지 못하고 계속 수사를 했다. 서장은, ‘서울청에서 보내준 증거 분석 결과가 있는 저장장치에는 볼만한 내용이 없었고, 인터넷 구글링을 해보고 바로 이런 글이 튀어나왔다’는 보고를 받고 매우 충격에 빠져서 ‘서울청에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이미 수서경찰서는 12월16일 서울경찰청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사건 중간수사 발표를 했다. 관련 혐의를 찾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말까지 했다.”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변호인 신문

변호인 반대 신문도 전화에 맞춰졌다.

변호사: 김하영 오피스텔 압수수색 영장 신청 당시, 요건이 구비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나?

권은희: 영창 청구 요건은 세 가지다. 범죄 혐의 사실 소명과 상당성, 수사의 필요성이다. 이 가운데 상당성과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혐의 소명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일시, 구체적인 장소를 기재할 정도로 소명이 되지는 않았지만, 세부 내용과 CCTV에 담긴 김하영 모습 등을 고려했다. 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높아 영장 신청 방침을 정했다.

변호사: 영장이 기각되리라고 예상했죠?

권은희: 예상을 했건 하지 않았건 큰 차이가 없다.

변호사: 피고인이 통화에서 ‘(권은희에게) 사시 출신으로 역시 똑똑하다, 당당하되 신중하게 하라’고 한 말도 있죠?

권은희: 네.

변호사: 증인의 기억에 따르면, 그 말 다음에 압수수색 영장 관련 지시를 했다는 건데 어투가 어땠나?

권은희: 어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용이 중요했다. 압수수색영장 관련이 아니라면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변호사: 영장 철회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거같이 느껴졌나?

권은희: 서울경찰청장이 일선 과장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데 당연히 그 정도는 느껴졌다.

변호사: 그래서 어떻게 반응했나?

권은희: 특별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변호사: 적극적으로 증인의 의견을 표명하지는 않았죠?

권은희: 네.

변호사: 소명 부족으로 영장이 기각될 거라고 예상했죠?

권은희: 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 때문에 (수사팀) 모두가 해야 한다고….

변호사: 기각을 예상했나 안 했나?

권은희: 검찰이나 법원에서 필요성과 상당성에 대해 인정해 청구하거나 발부할 수도 있고, 좀 더 소명해서 보강수사 지휘를 검찰이 하거나 혐의사실이 부족하다고 해서 법원에서 기각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변호사: 내가 묻는 건 당시 어떻게 (당신이) 생각했냐는 것이다.

판사: 여기까지 하시죠. 당연히 청구하는 입장에서는 청구를 전제로 하고, 기각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변호사: 피고인의 전화가 부당한 지시로 보기는 어렵지 않나?

권은희: 그건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것이다. 현장을 보고 기록을 보고 압수수색영장 신청 여부는 우리(수사팀)가 판단하는 것이다. 서울청장이라는 지휘에 있다는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 신청하지 말라고 하는 건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게 맞다.

9월6일 열릴 3차 공판에는 검찰・변호사・권은희 증인 등이 계속해서 언급한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수사과장을 비롯한 증인이 출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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