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희 과장이 무고죄로 걸릴 판?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1심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이날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을 취재한
<시사IN> 기자들이 모여 법정 안팎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김용판 전 청장이 펴낸 책 제목이 화제에 올랐다.

정리 김은지 기자(smile@sisain.co.kr)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1심 선고가 난 2월6일 저녁, 그동안 법정 중계를 담당했던 사회팀 기자들이 모였다. 김 전 청장의 재판을 방청하고 이를 지면으로 중계한 취재기자들은 지면에 담지 못했던 법정 안팎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기자들 이름은 닉네임으로 처리했다(닉네임은 김하영씨 등 국정원 직원이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서 쓴 아이디 가운데 일부를 차용했다).

숲속의참치: 무죄가 났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토탈리쿨: 보통 무죄가 나는 공안 사건의 법정은 특징이 있다.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는 순간 법정에 나온 피고인 쪽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박수를 친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이나, 서울시 탈북자 간첩 사건 등이 그랬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선고가 나는 순간, 조용했다. 김 전 청장은 곧바로 사복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1층으로 내려갔는데 경찰이 워낙 과잉경호를 하다 보니 무죄를 받은 사람인지 유죄를 받은 사람인지 헷갈리더라.

숲속의참치: 법조 출입기자들 반응도 궁금하다.

토탈리쿨: 무죄 선고가 난 뒤, 김 전 청장에게 기자들이 공격적으로 질문을 했다. “법정 들어올 때 표정이 좋던데, 먼저 들은 이야기가 있었나” “아직도 중간수사 발표가 옳았다고 생각하나” “고향에서 출마할 건가” 같은 날선 질문이 터져나오니 김 전 청장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답한 게 딱 하나 있는데, 앞으로 뭐 하려고 하냐는 질문에 “밥을 먹겠다”라고 했다. 그런 다음 사복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지인들에게 “소주 한잔 하러 가자”라며 떠났다.

진짜진짜라묜: 이번 결과를 두고 말이 많다. 검찰이 공소 유지에 실패했느냐, 재판부가 결론을 먼저 내리고 판결했느냐는 논란이다.

토탈리쿨: 재판부도 그런 여론에 꽤 신경을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판결 내용을 읽기 전에, 오직 법관의 양심에 따라 증거로 채택된 것만 보고 판결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재판 초기에는 “신문 등에 나오는 내용을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막상 판결이 나오고는 여론을 의식하는 듯했다. 판결문을 받기 위해 공보판사실에서 기다리는데, 이범균 재판장이 공보판사실에 직접 찾아왔다. 판결이 나고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았을 때인데 한 인터넷 매체에 재판장 설명 자료(기자들에게 배포하는 공판 설명 자료)가 전문 그대로 올라와 있다면서 “매우 부적절해 보이니 조치를 해달라”고 공보판사에게 말하고 나갔다. 같은 시각 실시간 검색 순위에 이범균 부장판사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왼쪽부터 이보형·이범균·오대석 판사)가 사건을 담당했다.

권은희 증언은 배척, 김병찬 증언은 인용

추천박아라: 되돌아보면, 김 전 청장은 공판 내내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법정에서 하품하는 모습도 열 번은 넘게 본 거 같다. 자기 유·무죄가 걸린 법정에서 수차례 하품하는 모습은 상당히 이례적이라 눈에 띄었다.

진짜진짜라묜: 예외는 있었다. 권은희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나왔을 때다. 권 과장 쪽으로 시선을 한 번도 주지 않고, 줄곧 자료를 보거나 다른 곳만 봤다.

숲속의참치: 증인 18명이 나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을 각자 꼽아본다면?

진짜진짜라묜: 서울청 김병찬 수사2계장은 재판 중에 가장 많이 언급된 사람이다. 안 아무개 국정원 직원과 50여 차례 문자나 통화를 했고, 김하영씨를 증거분석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던 인물이다. 검찰은 김 계장을 경찰-국정원 연락선으로 봤다. 검찰이 법정에서 “서울청 수사과장·수사부장은 국정원과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맞느냐”라고 질문하자, 김 계장은 물어본 것에 대답하기보다는 검사가 윽박지르며 압박했다고 해당 검사를 눈짓으로 가리키기도 했다. 신문 내용에 대한 답보다 자기변명에 가까운 말을 자주 해서 판사로부터 여러 차례 지적을 받기도 했다. 보다 못한 판사가 “증인에 대한 발언을 제한하겠다. 벌써 세 번째다. 회의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물은 거 아니다. 증인이 하고 싶은 말 하라고 이 자리 마련한 거 아니다”라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판결문을 보니 이범균 판사는 김병찬 계장 증언은 판결문에 인용했고, 권은희 과장 증언은 배척했더라.

추천박아라: 김하영씨 노트북 등 디지털 증거를 분석했던 김수미 분석관도 기억에 남는다. 중간수사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노트북에 게시글 흔적이 없더라도 김하영씨가 삭제했을 가능성에 대해 물었는데 답을 못했다. 법정에서 검사가 그 이유를 묻자 김 분석관이 “그때 기자 질문을 잘 이해 못했고 지금 들어도 사실 이해가 안 간다”라고 말을 해서 실소가 터졌다.

숲속의참치: 가장 아쉬운 부분은 증인으로 채택된 박원동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의 불출석이다. 사유가 ‘증인출석 요구서 송달 불능’이다. 퇴직한 박 전 국장의 주소지를 몰라 두 번이나 반송되었다. 박 전 국장은 이 재판에서 중요 증인이다. 2012년 12월16일 김용판 전 청장에게 “진짜 청장님한텐 전화 안 하려고 했는데…, 디지털증거분석은 2~3일이면 끝나는데 경찰에선 분석 결과가 나왔음에도 눈치 보느라 (발표) 안 한다고 한다”라고 전화한 장본인이다.

토탈리쿨: 주소지 파악 불능이라는 박 전 국장이 서울 강남에 사무실을 냈다고 들었다. 기업체 정보 담당 인사들은 빌딩 이름까지 알더라. 박 전 국장이 국정원에 있으면서 검찰 등 법조 쪽 정보관을 오래 했다.

숲속의참치: 하나 더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검찰이 최현락 서울청 수사부장과 이병하 서울청 수사과장을 같이 기소하지 않은 점이다. 민주당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서 직속 부하인 이종명 3차장과 민병주 심리전단장을 재정신청(불기소된 사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했던 것처럼 김용판 재판에서도 최현락·이병하를 재정신청했다면 어땠을까.

진짜진짜라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졌다면, 최현락·이병하도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어서 또 다른 증언을 내놓았을 가능성이 있다. 두 사람은 현직 신분이기 때문에 김 전 청장과 다른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

추천박아라: 증인은 아니지만 법정 방청석을 늘 차지하던, 경찰·국정원 정보관도 이 공판의 숨은 조연이었다. 그분들은 티가 난다. 2G폰을 소지하고 있고 수기로 받아 적는다. 공판에서도 그런 정보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검사가, 이들이 나온 얘기를 다 적어가서 내부 감찰에 활용하고 이후 공판에 나올 증인에게 입맞추기를 시도한다는 지적이었다. 재판부는 끝내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숲속의참치: 재판 중에, 김용판 전 청장이 경찰 내부 자료를 증거로 제출해서 검사가 문제 제기를 한 적도 있었다. 이광석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장에게 김 전 청장의 변호인이 질문을 하면서 경찰의 수사 기밀문서를 법정에 낸 거다. 문건에는 김하영씨의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면서 검찰로부터 수사 지휘를 받은 내용이 있었다. 검사가 항의하자 변호인은 출처에 대해서 그날은 해명을 하지 않고 다음 기일에 ‘내부 문건을 퇴직하면서 가지고 나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알게 모르게 경찰 조직이 김용판 전 청장을 돕고 있다고 검찰은 봤다.

토탈리쿨: 경찰·국정원 직원은 한결같이 입을 맞추고 나왔다. 어떤 경찰은 메모까지 들고 법정 증언대에 섰다가 재판장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입 맞추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느꼈던 장면이 있다. 한 경찰 간부가 통화한 시각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증언을 하자 재판부가 “상세 답변이 나오는 게 오히려 상식에 안 맞는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재판은 김용판 개인이 아니라 경찰·국정원 전체 조직을 수사팀이 상대한 측면이 있다.

숲속의참치: 심지어 검찰 수뇌부나 법무부에서도 도와주지 않았다. 원세훈·김용판 수사를 동시에 진행한 특별수사팀 소속 평검사 7명 가운데 4명이 기소 이후에는 원대 복귀했다. 남은 평검사 3명이 공소 유지와 추가 수사를 담당하다가 이 가운데 2명이 최근 지방으로 발령 났다. 경찰, 국정원, 검찰 수뇌부 등 3중고에 처한 수사팀에게 유죄 입증을 바라는 건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추천박아라: 권은희 과장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재판부로부터 ‘진술을 신빙할 수 없다’는 평을 들었다. 거짓말쟁이라는 말 아닌가. 그런데 권 과장이 이 사건에서 거짓말을 해서 얻을 실익이 뭔가. 오히려 이번 승진에서 누락된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숲속의참치: 반면 이 재판에서 김용판 전 청장에게 유리하게 증언을 했던 경찰 간부들은 모두 승진했다. 여기 나온 경찰 증인들은 모두 현직이다. 누가 진술을 꾸몄을 때 실익이 있는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나온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권 과장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 논리대로만 하면, 김용판 전 청장은 권은희 과장을 무고죄로 걸 수 있을 정도다.

김용판 전 서울청장은 “검찰의 날조 공소장을 보며 밤새 술을 마시며 울었다”라고 진술했다.

김용판 저 <우리가 모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진짜진짜라묜: 김용판 전 청장의 변호사가 경찰 증인신문을 하면서 으레 하던 질문도 떠오른다. 이 질문이 나오면, ‘아, 신문 끝났구나’ 싶었다. 김용판 전 청장이 재직 시절 낸 책에 대해 물어보는 거다. 책 제목은 <우리가 모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인데 꼭 경찰 증인들에게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신기한 게 이 질문을 받은 경찰 증인들이 모두 읽었다고 하더라. 그러면 변호인은 “책은 직원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자기주도형 공무의 정착을 중요하게 여긴다”라면서, “그런 책을 쓴 김용판이 그런 철학대로 국정원 사건을 처리하지 않았겠느냐”라고 물었다. 현직 경찰 증인들은 예외 없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하도 자주 듣다 보니 내겐 “믿습니까?” 물음에 “아멘!” 응답으로 들렸다.

추천박아라: 권은희 과장 증인신문 때는, 그런 질문이 안 나온 거 같은데(웃음). 그 책은 서울청장 재직 시절인 2012년 10월에 출간했다. 무죄 판결 뒤에 책 제목을 곱씹어보면 예사롭지 않다. ‘우리가 모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 상황과 딱 어울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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