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6일 목요일 누가 웃을까

증거 기록 5400여 쪽, 공판 14회, 증인 17명이라는 기록을 남긴 ‘김용판 재판’이 마무리되었다.
2013년 12월26일 검찰은 징역 4년을 구형했다. 6개월간 진행된 재판은 2월6일 재판부의 선고만 남았다.

김동인 기자(astoria@sisain.co.kr)

지난 6개월간 진행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공판이 마무리되었다. 지난 12월26일 공판에서는 검찰의 구형(징역 4년: 공직선거법 위반 2년, 직권남용 2년), 변호인의 최후변론 및 김용판 피고인의 최후진술까지 진행되었다. 김 전 청장은 A4 용지 12장을 꺼내들고는 또박또박 읽었다. 지금까지 증거 기록 5400여 쪽, 공판 14회, 증인 17명이라는 기록을 남긴 김용판 재판은 2월6일 선고만 남겨뒀다. 김 전 청장은 최후진술에서도 검찰의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검찰의 ‘짜깁기 수사’로 공직 생활 23년이 졸지에 ‘역사의 죄인’이자 ‘정치 경찰’이 되었다며 억울해했다.

검찰 최후 의견 진술 및 구형

검사 : 먼저 사건의 주요 쟁점을 말하겠다. 첫 번째로 검찰은 피고인이 주장하는 디지털 증거분석 범위 제한이라는 논리(국정원 김하영 직원이 노트북 등을 경찰에 임의제출하면서 분석 범위를 ‘지난 3개월간(2012년 10~12월) 박근혜 지지·문재인 비방 게시글 댓글’이라고 썼다는 점을 근거로 경찰은 디지털 증거물 분석 범위를 김 직원이 지정한 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가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증거를 은폐하기 위한 허구적 논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피고인은 임의제출 범위 제한에 따른 정당한 분석 범위였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로 검찰은 피고인이 수사 단서를 확보한 사실을 보고받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허위 발표를 강행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피고인은 자신이 컴맹에 가까워서 실무진에게 쟁점을 위임하고 보고받은 분석 내용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로 검찰은 피고인이 본청(경찰청)에 의미 있는 자료 확보 사실(김하영 직원 노트북에서 나온 아이디·닉네임 40여 개 등)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채 형식상 승인을 받아 중간수사 발표를 강행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피고인은 본청에 제대로 보고하고 경찰청장 지침에 따라 발표했다고 주장한다.

검찰 주장의 근거를 설명하겠다. 우선 서울청이 디지털증거분석팀 명의로 내세운 분석 범위 제한 논리는 실제 업무 상황과 여러 가지로 맞지 않다. 첫째로, 경찰은 분석 범위 제한 때문에 ‘하드 전체 분석은 안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드 전체를 분석했다. 둘째로 ‘전자정보 전체를 압수수색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하드 정보를 모두 취득했다. 셋째로 ‘한정된 범위 분석 결과를 수서경찰서에 송부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분석 자료를 송부하고 심지어 분석을 위해 생성한 전체 이미징 사본도 송부했다. 실제로 이런 경찰의 분석결과물 처리 과정만 봐도 분석 범위 제한 논리는 증거분석 결과 은폐·축소 논리에 불과한 게 명백하다.

또 피고인은 자신이 사이버나 디지털 분야에 문외한이고 컴맹 수준이라 디지털 증거분석 얘기를 들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피고인은 그럼 정말 컴맹인가? 피고인의 경력을 보면, 20년 이상 경찰 간부로 근무했다. 공안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청 보안국장도 두 차례나 역임했다. 보안국은 보안사건 직접 수사 및 지방청 수사 지휘를 한다. 보안사건 수사 재판은 적법 절차 준수와 디지털 증거의 압수수색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피고인은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선거 사건인 국정원 사건에 대해 수시로 충분히 내용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피고인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게다가 당시 경찰청 본청에는 증거분석 상황도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기용 당시 경찰청장은 아이디·닉네임이 있었다는 정도의 보고만 받고 국정원 여직원이 다수 아이디·닉네임으로 업무상 활동한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즉, 경찰청은 서울청으로부터 분석 결과 박근혜 지지·문재인 비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정도의 결론만 보고받고서, 분석 결과 발표에 대해 형식상 승인했다는 것에 불과함이 확인되었다.

이렇게 피고인은 분석 결과를 은폐하고 수사팀에게 허위 사실 발표를 지시했다. 서울청에서 수서서로 가는 분석 결과 송부를 거부·지연해 수사팀의 수사도 방해했다.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직권남용이 명백하다. 또 중간수사 결과 발표는 2012년 3차 대선 후보 TV토론 직후에 있었다. 예상대로 언론의 관심은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었다.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경찰의 발표가 크게 보도되었다. 이 보도로, 대선을 이틀 남겨두고 대선 최고의 승부처로 여겨진 TV토론도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본건 중간수사 결과 발표 내용은 선거에 활용되었다. 피고인의 행위가 선거에 미친 내용을 계량화할 수는 없으나, 일정 부분 표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할 수 있어 선거운동 요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종합해 검찰은 피고인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및 경찰공무원법 위반죄 징역 2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죄 징역 2년을 구형한다. 앞으로 이런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본건을 계기로 관의 선거 개입 시비가 근절될 수 있게 엄중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

변호인 최후변론

변호인 : 변호인 프레젠테이션(PT) 전에, 검찰 PT에 대해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검찰 PT에 따르면, 역사 이래 컴퓨터를 비롯해 모든 분야에 가장 유능하고 전지전능한 게 서울청장인 거 같다. 검찰은 (피고인이) 경찰청 보안국장을 2회나 역임해 디지털 증거분석이나 컴퓨터에 상당한 지식이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재직 기간은 합쳐서 10개월도 되지 않는다. 또 검찰은 김용판 전 청장이 국정원 출신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피고인은 25년 전 1년6개월간 국정원에 근무했을 뿐이다. 적성에 맞지 않아 국정원을 사직하고 경찰에 입직했는데, 마치 경찰 재직 중 국정원에 파견근무해 국정원에 상당한 인맥이 있는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다.

본격 프레젠테이션에 들어가겠다. 첫 번째, 증거분석-중간수사 결과 발표-증거물 반환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사 과정은 적법했다. 두 번째, 피고인의 위법·부당한 지시가 있었는지를 뒷받침할 검찰의 직접 증거는 없다. 그나마 공소사실에 일부 부합하는 권은희 수사과장의 증언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또한 이광석 수서서장 등의 증언에 비춰보면 권은희 과장의 증언이 얼마나 거짓인지 알 수 있다. 정작 수서서의 수사팀과 서울청 분석팀은 모두 외압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증언한다. 권은희 과장만 외압을 당했다면서, 다 알다시피 일부 진영으로부터는 경찰 조직 내부의 부조리를 폭로한 시대의 양심으로 추앙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권은희 과장만 정의이고 나머지 경찰은 모두 불의한가? 결코 아니다. 세 번째 ‘2012년 12월 당시 관점이 아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현재 시점으로 당시 사건을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게 정당한가?’이다. 이것도 결코 정당하지 않다.

국정원과의 교감 의혹에 대해서도 말하겠다. 검찰 주장의 전제는, 서울청 김병찬 계장이 국정원 연락관 안 아무개와 수차례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받은 정황에 비추어 피고인이 김병찬을 통해 국정원으로부터 지시 혹은 부탁을 받고 정보를 공유한 게 아니냐는 게 검찰 주장의 전제다. 1년 전 언제 누구와 몇 초 동안 통화했는지 무슨 내용인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대답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김병찬 계장은 “그런 걸 협의하고 알려주려면 직접 불러서 이야기하지 멍청하게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겠느냐”라고 했다. 즉, 이 사건은 단언컨대 국정원과의 교감이 전혀 없었다.

결론적으로, 수서서 수사팀은 정치적 고려 없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고 자부한다. 서울청 분석팀은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분석관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분석했다고 증언한다. 피고인은 누구에게도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거나 수사 방해를 지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 이 사건을 둘러싼 경찰 내부 갈등과 반목을 부추기고 추측만으로 의혹을 제기해 경찰 조직 전체 사기를 떨어뜨린 것은 검찰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은 거짓에 열광하고 진실에 실망한다’는 말이 있다. 여전히 피고인의 수사 은폐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수많은 증언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건 눈앞의 진실을 애써 외면하는 건 아닌지 되묻고 싶다.

김용판 전 청장 최후진술

제가 사건 축소·은폐 지시를 했다면 지금쯤 다른 경찰 직원들의 다양한 형태의 양심선언이 줄을 이었을 것이다. 수사팀의 수사를 방해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실체적 진실이 아니다. 결코 동의할 수 없고, 절대 인정할 수 없다. 이 자리에서 검찰에 되묻고 싶다. 검찰이야말로 저를 기소하는 데 잘못된 선입견에 의해 짜맞추기 기소, 짜맞추기 수사를 하는 게 아닌가? 저는 이제껏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정치권에 줄을 대어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전 지금 이렇게 법정에 서 있다. 제가 경멸하다시피 했던 ‘정치 경찰’이라는 오명을 덮어쓴 채 이 자리에 서 있다. 그것도 개인 영달에 눈이 멀어 조직을 팔아 대선에 개입한 역사의 죄인이요, 철면피한 자로 매도되어 이 자리에 서 있다. 너무나도 참담한 심정이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수많은 날을 불면으로 지새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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