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말 바꾸기에 판사도 갸우뚱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10차 공판에는 국정원 직원 황 아무개씨가 출석했다.
검찰 조사에서 다른 이들과 달리 상세히 진술했던 그녀는 이번 증인 신문에서 검찰 조사 때 했던 말을 모두 뒤집었다.
김은지 기자(smile@sisain.co.kr)
전혜원 기자(woni@sisain.co.kr)
황씨는 검찰 조사에서 다른 직원들과 달리 상세히 진술했다. 검찰 처지에서 국정원 직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증인이었던 황씨는 원래 지난 10월7일 출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임신에 따른 구토 증상으로 출석을 미뤘다. 한 달 만에 증인석에 앉은 그녀는 검찰 조사 때 진술을 모두 뒤집었다. 판사조차 바뀐 진술에 대해 “이해가 안 된다”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점심 휴정 때 법정을 걸어나가던 한 검사는 원세훈 쪽 변호사에게 “(다 부인해서) 반대 신문 하실 게 없겠다”라고 말을 건넸다. 변호사는 “(검찰 조사 때) 얼마나 무섭게 한 거냐. 저 직원이 맷집이 제일 약한 것 같다”라고 응수했다. 이날부터 이종명 전 3차장,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도 피고인석에 앉아 원 전 원장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크라우드 저널리즘
황○○ 증인에 대한 검찰 신문
검사: 외부활동 관련 동일 장소 반복이용 금지, 청사 인근 카페 출입 최소화, 가급적 CCTV 출입문에서 멀리, 본인 명의 신용카드 및 흔적 남기기 주의 등’ 업무 매뉴얼을 2012년 4월 원내 이메일을 통해 전달받아 읽어봤다고 검찰에서 진술했죠?
황○○: 진술은 그렇게 했지만 업무 매뉴얼 관련 사항은 구두로 전달받았다. 다른 여타 행정 관련 이메일과 착각했다. 너무 헷갈렸다.
검사: 그럼 착각했다고 알게 된 이유는?
황○○: 그 이후에 검찰에서 진술했던 조서를 살펴보다 오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검사: 조서를 살펴봤다고 하셨죠?
황○○: 어떻게 진술했는지 곱씹어보니까, 그때 제가 본 게 이메일로 전달받은 게 아니라고 기억해냈다.
판사: 이메일로 받은 게 아니었으면 어떤 경위로 업무 매뉴얼을 보았는지 기억이 나는가?
황○○: ‘구두로 전달받은 게 업무 매뉴얼이었구나’라고 나중에….
판사: 업무 매뉴얼은 서면인데, 서면을 구두로 전달받았다는 건 직접 누군가에게 교부받았다는 것 아닌가?
황○○: 서면으로 본 적은 없다.
판사: 받은 경위가 직접인지 이메일로 받은 것인지는 착각할 수 있는데, 증인의 수사기관(검찰) 진술은 이메일로 받아서 읽어보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아니, 읽어보지도 않고 처음 보는 문서를 착각해서 이메일로 받아서 읽어보았다는 건 조금 이해가 안 된다.
황○○: 당시 비슷한 성격의 지시나 행정 관련 메일이 많아서 뭐를 열어봤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헷갈려서 진술한 것이다.
검사: ‘금일 이슈 및 대응 논지’는 여러 가지 이슈가 선정되고 그 이슈별로 각각 2~3줄 정도로 (댓글) 작성 방향이나 요지가 담겼다고 검찰에서 진술했죠?
(심리전단 요원들이 매일 받았다는 ‘이슈 및 논지’는 일종의 업무지침이다. 검찰은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강조 말씀이 이슈 및 논지라는 지침으로 바뀌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국정원의 방해로 서면이나 메일 형태로 된 증거를 압수하지 못했다.)
황○○: (이슈 및 논지를) 구두로 전달받았다.
검사: 증인은 검찰 조사 때 “‘이슈 및 논지’라는 서면을 받았는데 한 개 내지 두 개로 꼭지로 전달받아 글 게시한 겁니다”라고 구체적으로 진술하면서 당시 증인이 받았던 ‘이슈 및 논지’ 양식을 직접 써서 제출한 바도 있다. 그때 증인이 이것 작성한 건 맞죠?
황○○: 제가 했다. 하지만 구두로 전달되는 주제를 좀 더 업무를 잘 기억하고자 평소 메모하는 습관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검찰 조사 당시 서면으로 받았다고 해야지만 제가 덜 불리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에….
검사: 허위 진술했다? 서면으로 받았다고 하는 게 본인에게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고?
황○○: 많이 위축되고 당황해서….
검사: 증인은 검찰 조사 때 “2012년 당시 주요 대선 후보의 공약이나 논쟁 대상이 되었던 정책에 대해 지시받은 바 있냐”라는 검사 질문에,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추상적으로 정치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있었지만 선거 관련해서 글을 올리면 안 된다는 취지의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라고 진술했죠?
황○○: 진술을 그렇게 했지만,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는 걸로 봐서 그때 당시 많이 위축되고 거의 울면서 답변한 수준이다.
검사: 증인은 검찰 조사 받은 이후에 검찰 조서를 보거나 들은 적 있나?
(참고인인 황씨의 조서를 열람·복사할 수 있는 사람은 검찰과 재판부, 그리고 변호사뿐이다.)
황○○: 휴직 중이어서 사무실에는 출근하지 않는 상태다. 출석 앞두고 긴장을 많이 한 탓에 통화로 진술을 어떻게 했는지 러프하게….
검사: 누구에게 검찰 조서 내용을 들었나?
황○○: 사무실(국정원)에서… 들었다.
검사: 증인은 2012년 1월3일 ‘82쿡 사이트’에 ‘어제 S본부 힐링캠프 보셨나요’라는 제목으로 “첨엔 얼마나 잘하나 호기심으로 봤는데 볼 만하더라고요. (중략) 올해 국민들의 선택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네요”라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썼죠?
황○○: 맞다. ‘이슈와 논지’와 무관한 제 생각을….
황○○ 증인에 대한 변호인 신문
변호사: 울다시피 진술했다고 했는데, 검찰 조사 받을 때 검사나 수사관으로부터 참고인으로 수사받지만 경우에 따라 형사처벌될 수 있다는 말 들었나?
황○○: 들었던 것으로….
변호사: 증인은 다른 파트원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글을 올리고 추천·반대 클릭 수도 적다. 그 이유는?
황○○: 업무 수행을 다른 직원에 비해 못한 측면이 있다. 주로 내근으로만 활동하다 보니 적응 못한 것도 있었다.
검사: 변호사가 검찰 조사 때 증인이 울먹였다고 말하면서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조사하지 않았냐는 취지의 질문을 해서 묻겠다. 진술조서에서 ‘울먹였다’고 표현된 대목은, 진술인이 “낚시성 글을 작성했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는 낚시성 글과 부합하는 행동을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계속 검사가 질문을 하자 (증인은) 답변을 못하고 맨 마지막에는 “저에 앞서서 조사받고 간 제 파트원들 입장 때문에 제가 뭐라고 답변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시받고 한 부분이다 보니…”라며 울먹였다. 오늘도 증인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데, (검찰 조사 당시) 일관된 답변을 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라 울먹인 건 아니었나?
황○○: 잘 기억을 하지 못해서 빨리 넘어가고자, 제가 아는 것도 다 무너져 내리면서 답을 놓쳤다. 굉장히 감정이 격앙되고 많이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