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증거조사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원세훈 전 원장은 상체를 틀어 PPT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림 서혜주

원세훈 “가수 신해철도 국보법 처벌 대상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판 첫날 다양한 증거가 나왔다.
가수 신해철의 글을 문제 삼는 등 원 전 원장이
취임 초기부터 인터넷을 주목했음이 드러났다.
언론과 종교에 관여할 것을 지시하는 발언도 공개됐다.

김은지 기자(smile@sisain.co.kr)

첫 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사는 프리젠테이션을 했습니다. 검찰은 원세훈 전 원장이 종북 세력 척결과 국정 성과 홍보는 별개가 아니라는 등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통해 정치에 관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은 매일 아침 원세훈 원장이 주재하고 본부차장, 실국장이 참석하는 ‘모닝브리핑’을 거쳐, 업무지침인 ‘이슈와 대응논지’를 통해 심리전단 요원 70여명에게 전달됩니다. 검찰은 이 전달사항에 맞춰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사이버 활동을 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변호인단은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원세훈 원장은 정치관여와 관련한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반박했고, 검찰이 국정원을 범죄집단과 동일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과 종북 좌파의 공세에 적절히 대응하라는 발언은 국정원장으로서 고유 업무라고 덧붙였습니다. 검사와 변호사의 논리가 팽팽히 맞서는 공방은 1차 재판부터 시작되었습니다.

8월26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502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1차 공판이 시작되었다. 재판장의 공판 진행 공지가 끝나자마자, 검찰과 원세훈 측 변호인 사이에 공방이 벌어졌다.

변호사: 오늘 본재판 날 <한겨레> 1면에 국정원 심리전단 매뉴얼이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의심해서 죄송하지만 이런 비밀을 어떻게 얻은 건지…. 저희는 굉장히 유감을 표한다. 적절한 조치를 취해달라.

검사: 저희도 굉장히 유감이다. 저희가 재판에서 해야 할 이야기가 미리 언론에 나온 건 굉장히 충격적이다. 공소 유지를 방해하는 것이다. 당황스럽고 대단히 유해한 일이라 생각한다.

판사: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검찰 쪽에서 내부 단속 좀 해주시고, 재판부는 가능한 한 이 법정에서 현출(드러남)되는 증거로만 재판을 할 테니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동은 자제해달라.

초장부터 팽팽한 기 싸움이 벌어진 후, 검사의 모두발언이 시작되었다. 첫 공판에서는 검사·변호사 각각 1시간30분가량 법정 피고인석 뒷자리에 PPT 화면을 띄워놓고 발언을 했다.

검사: 일부 야당이나 정치인까지 종북 세력으로 보고 대응한 것은 피고인(원세훈)의 그릇된 종북관 때문이다. 안보기관의 수장으로서 재판 결과 등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종북 딱지를 붙이는 신종 매카시즘이라고 할 것이다.

검사는 PPT 화면에서 다양한 ‘원장님 말씀’을 보여줬다.

“야당이 되지도 않은 소리를 하면 처박아야지. 금년에 잘못 싸우면 우리 국정원은 없어지는 거야(2012년 2월17일 전 부서장 회의, 원세훈).”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 우리가 일하는 게 맞다. 국민의 의사가 많이 반영된 게 여당이다. 부서장들은 이 정권밖에 더 하겠어요, 다음에 이 정권 빼놓고 길게 할 거 같아요(2009년 11월20일 원장님 말씀 요지, 원세훈).”

검사는 직접 원 전 원장의 발언을 소리내어 읽기도 했다.

크라우드 저널리즘

국정원장 지시 강조 말씀

검사: 당시 가수 신해철이 ‘북한에서 경축 인공위성 발사 성공(2009년 4월8일 자신의 홈페이지)’이라고 인터넷에 띄운 게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원 전 원장은) ‘국가보안법 처벌 사안이다. 물론 법원에서는 쉽지 않겠지만…. 요 정도 가지고 (문제를 삼으면) 심하지 않나 하면서, 처벌이 잘 안 될 수가 있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가 본데, 인터넷은 몇 사람 모인 곳이 아니라 국민에게 엄청나게 영향을 미치는 곳이기 때문에 처벌을 해야 한다. 왜 이런 생각을 우리 직원들이 못하느냐(2009년 5월15일)’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만큼 취임 초부터 인터넷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

이어 박 부장검사는 언론과 종교에 대한 원 전 원장의 발언도 소개했다.

검사: 원 전 원장은 편향보도 문제도 언급한다. ‘보수 단체에서 노무현 구속하라고 장충동 체육관에서 3000명 집회한 거는 보도가 난 데도 없고 봉하마을 40명 반대 집회한 건 전 방송에 보도되었다. 편향 보도다. 그런 걸 잘 챙겨달라’, 이런 지시가 있다. 언론 보도에 관여할 걸 지시한다. …2010년 1월22일 부서장 회의에서는 ‘일부 종교단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피고인이 말하자, 이후 정부 비판적인 유력 종교인인 명진 스님의 룸살롱 출입 전력을 (심리전단 직원이) 온라인에 게시한다.

사가 모두발언과 증거조사 내용을 프레젠테이션하는 동안, 원 전 원장은 파란 반소매 수의를 입은 상체를 아예 화면 쪽으로 틀어 PPT 화면을 봤다. 원 전 원장의 변호인들이 눈을 감고 있거나 책상에 놓은 종이만 보는 모습과 대비되었다. 판사는 검사의 말을 중간중간 자르기도 하며 꼼꼼하게 질문했다.

판사: 저 문서는 누가 작성해서 누구에게 보고한 것인가? 그런 문건이 작성되었다는 것과 이 문건이 작성되어 피고인도 알고 있었다는 건 별개인데 조금 더 (보강이) 필요하지 않나?

주로 김성훈 검사가 대답을 했지만 때에 따라 윤석열·박형철 부장검사도 나섰다.

원 전 원장의 변호인은 모두발언에서 모든 업무는 대북심리전의 일종이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가 모호한 활동을 하는 국가정보기관을 인허가 기관과 동일시할 수 없다.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은 국정원 고유 업무다. 검사는 겉으로 보이는 데 집착해서 범죄를 피상적으로 바라본다. 행위의 주체와 목적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조폭이 피해자를 목 졸라 죽이면 죄가 되지만, 판사가 조폭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교도관이 사형 집행을 하면 죄가 아니다. 심리전단은 판사와 교도관 역할을 한 거지 조폭 역할을 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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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검사는 국정원의 활동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검사: 심리전단 사이버 조직은 4팀 70여 명이다. 처장급 4명이 팀장으로 활동했다. 안보 포털 운영(1팀), 국내 포털 담당(2팀), 오늘의유머·일간베스트 등 인터넷 커뮤니티 담당(3팀), 트위터 등 SNS 선동 대응(4팀) 팀별로 맡은 바를 수행했다. 각 팀은 4~7명 정도로 구성된 파트별로 분장 업무를 수행했다. 사이버팀 직원 1명은 하루 게시글 3~4개 목록을 제출했다. 그렇게 한 달에 게시물 1200~1600건을 올렸다. 이들은 모두 매일 아침 국정원에서 ‘이슈와 논지’를 전달받아 각자에게 하달된 내용을 가지고 카페 등 국정원 바깥에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이용해 온라인 여론전을 펼쳤다. 각자 쓴 글 등을 일주일 단위로 삭제했고 같은 장소도 계속 이용해서는 안 되었다.

이렇게 움직였던 직원 중 심리전단 3팀의 5파트 소속 김하영씨가 지난해 12월11일 적발된 것이다. 김씨가 발견되자 같은 팀원도 속속들이 밝혀졌다. 압수수색한 김씨의 노트북에서 민간인 이정수씨(42·가명) 개인정보가, 휴대전화에서 파트장 이규진씨(42·가명) 연락처가 나와 이들의 정체도 들통이 났다.

민간인 ‘알바’(PA)는 이미 알려진 대로 월 300만원 정도를 받으며 국정원 심리전단 팀 산하 파트 단위로 함께 움직였다(PA는 매달 ‘알바비’를 현금으로 받거나 차명 계좌를 사용했다. 국정원 여직원 김하영씨(29)와 함께 일했던 민간인 이정수씨(42·가명)는 자신의 누나 계좌로 돈을 받았다고 8월26일 증거조사에서 검찰은 밝혔다).

사건이 적발된 초기에 이들은 우왕좌왕하며 김하영씨 변호사와 통화하거나 사무실에 모여 사건을 은폐할 대책회의를 꾸리기도 했다. 이들은 결국 모두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대신 앞으로 공판에 나와 증인석에 서게 된다. 검찰은 이들을 심문해 원 전 원장의 지시와 활동 내역 등을 밝혀내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당장 9월2일 열리는 2차 공판에서는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이 증인으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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